최근 대학을 졸업한 선수가 프로에 진출하는 사례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대졸 선수들이 프로 구단과 계약하는 건은 1년 중 손가락에 꼽을 정도인데, 실력이 뛰어난 선수들은 대부분 대학 재학 도중 프로 구단에 영입되기 때문이다. 그렇지 못한 선수들은 대학 졸업 후 하부리그 팀에 들어가거나 축구를 그만둔다. 하지만 적은 비중이나마 여전히 ‘대졸 신인’ 선수들은 존재한다. 강원FC 안경찬이 그 예다.
안경찬은 호남대를 졸업하고, 올해 강원FC에 입단했다. 그는 아직까지 프로 무대를 밟지는 못했지만, 어린 선수들의 경기 출전 보장을 위해 만들어진 강원 B팀 소속으로 K4리그 모든 경기(19경기)에 출장해 경기력을 향상 중이다. 안경찬은 본 포지션인 윙어 외에도 사이드백 등 다양한 포지션으로 경기에 나서며 멀티 자원으로 성장하기 위해 발돋움하고 있다.
3월 14일 2021 K4리그 개막전에서 데뷔골을 기록한 안경찬은 이후에도 팀이 지고 있는 상황에서 동점골의 도움을 기록하거나 추격골을 넣으며 B팀의 주축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안경찬은 3골 1도움을 기록 중이다.
호남대 시절 안경찬은 2019 U리그 6권역에서 14골로 득점왕을 차지했고, 2018 추계대학축구연맹전 결승전에서 골을 넣으며 호남대에 19년 만의 우승 트로피를 안겼다. 그러나 3학년 말 햄스트링 부상으로 프로 진출에 실패하면서, 동기 선수 중 유일하게 4학년까지 팀에 남게 됐다.
강원의 클럽하우스인 오렌지하우스에서 만난 안경찬은 4학년 시절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진짜 힘들었다”며 손사래를 쳤다. 다시 생각하기도 싫은 그 시절을 안경찬은 어떻게 극복했을까? 그는 해답으로 ‘긍정의 힘’을 들었다. 불안한 마음을 최대한 비우고 긍정적인 생각을 채우는 것이다. 때로 불안한 마음이 들지라도 “맛있는 거 먹고, 그냥 하루 푹 쉬고, 내일부터 다시 하면 된다”는 낙관적인 태도와 자신감이 안경찬을 뒷받침하고 있다.
-대학 시절부터 얘기해볼까요? 호남대를 나오셨죠?
네. 언남고를 다닐 당시 왕중왕전 경기를 호남대 김강선 감독님께서 보러오셨어요. 그 이후 감독님께서 저희 부모님을 찾아오셔서 이야기를 나눈 후에 (호남대에) 가게 됐습니다.
-입학 첫해부터 꾸준히 경기를 뛰셨더라고요. U리그 첫 경기부터 선발 출전도 하고요. 감독님께서 안경찬 선수를 무척 신뢰하셨나봐요.
항상 성실하게 열심히 했던 모습이 마음에 드셨던 것 같아요. 사실 1학년 때 제가 엄청 왜소했거든요. 지금도 왜소하긴 하지만. 피지컬적인 부분을 키우려고 웨이트트레이닝도 많이 했어요. 노력하는 모습을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코치님께서도 밤마다 저한테 간식을 먹이시면서 신경을 많이 써주셨어요.
-2학년 때는 19년 만에 호남대가 추계연맹전 우승을 차지했어요. 그때 안경찬 선수가 예선전뿐만 아니라, 결승전에서도 골을 넣으셨죠?
1학년 때 조금씩 경기를 뛰었던 덕에 자신감이 있었어요. 그때 고학년 형들도 많아서 한 경기, 한 경기가 시험대 같았거든요. 못하면 바로 출전 명단에서 제외되니까 부담도 컸어요. 근데 그럴 때마다 운이 좋게도 골을 넣어서 결승전도 선발로 나설 수 있었어요. 저도 결승전까지 간 게 처음이었고, 다른 선수들도 결승전을 뛰는 게 대부분 처음이었거든요. 그래서 더 간절했는데 골까지 넣어서 엄청 좋았어요.
-3학년 때는 U리그 득점왕이셨죠? 다른 해보다 특히 득점이 많이 터졌던데 비결이 뭔가요?
2학년 때 추계연맹전 우승을 하고 나서 형들이 다 프로로 진출했거든요. 4학년 형들이 아무도 없어서 고학년 중에 저 혼자만 공격수였어요. 그래서 골을 넣어야 한다는 부담이 많았고, 스트레스도 있었어요. 개인 운동 나가서 슈팅 연습을 엄청 많이 했는데, 마침 U리그에서 골이 많이 터져줘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해요.
-득점왕도 차지했겠다, 솔직히 그때 프로에 갈 줄 알았나요?
그 이후로 프로 진출 이야기가 조금 나오긴 했어요. 근데 마지막에 운이 좀 안 따라줬던 것 같아요. 왕중왕전을 할 때 햄스트링을 다쳤거든요. 참고 뛰긴 했는데 몸 상태가 안 좋으니까 경기력도 안 좋았어요. 그래서 결국 잘 안됐죠. 엄청 많이 아쉬웠어요.
-다른 동료 선수들은 어땠나요?
그때 저를 포함해서 3학년 선수가 3명이었거든요. 근데 한 명은 제주유나이티드로 가고, 한명은 부산교통공사로 가면서 저 혼자만 남게 됐어요. 저도 원래 K3리그든 어디든 나가려고 했는데 감독님께서 말리셨어요. 저를 프로로 꼭 보내고 싶다고, 1년만 더 해보자고 설득하셔서 결국 4학년까지 (호남대에) 있게 됐어요.
-보통 재학 도중에 프로로 나가잖아요. 본인이 4학년까지 학교에 있을 줄 알았나요?
사실 처음 입학할 때는 4학년까지 있을 생각이었어요. 제가 워낙 왜소하다 보니까 4학년 때까지 몸을 만들고 프로에 진출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근데 막상 대학교에 와보니까 U-22 룰이 걸리더라고요. 빨리 나가야 경쟁력이 있기 때문에 생각을 바꿨는데, 결국 처음 생각한 대로 4학년까지 마치게 됐네요.
-프로 진출에 실패했을 때 좌절하지는 않았나요?
처음에는 운이 없었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제가 부족했던 걸 인정하게 되더라고요. 어쨌든 결과가 이렇게 된 건 제가 다른 친구들보다 부족했다는 거니까, 그 사실을 인정하고 더 열심히 했죠.
-4학년 때 정말 힘들었을 것 같아요. 안 그래도 뒤처진 것 같은데 마음 놓고 얘기할 친구들도 없어서 더욱요.
어우... 그때 생각하면 되게 힘들어요. 심지어 저 혼자 남아서 주장까지 했거든요. 제가 주장할 성격이 절대로 아닌데 말이죠. 전 딱 제 일만 하고 남을 챙기는 스타일이 아닌데, 어쩔 수 없이 주장을 맡으면서 성격도 바뀌었어요. 제 밑으로 40명이 있었거든요. 주장하면서 애들한테 뭐라고 하기도 하고, 챙겨주기도 하면서 성격이 좀 바뀌었죠. 그래도 혼자 있는 제가 불쌍해서 그런지 애들이 말은 잘 들어주더라고요(웃음). 근데 진짜 힘들었어요.
-4학년 때는 이전보다 득점이 조금 줄었던데요.
작년에도 무조건 골을 넣어야겠다는 압박감이 심했어요. 경기를 할 때마다 엄청 불안했던 것 같아요. 그게 득점을 하는데 좀 방해가 됐어요. 그리고 경기 외적으로도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았거든요. 수석 코치님께서 나가시고 골키퍼 코치님이랑 감독님 두 분만 남으셔서 제가 해야 할 역할이 더 많았어요.
-그 힘든 시기를 어떻게 버티셨어요? 축구를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없었나요?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는데, 오래 그 마음을 가졌던 적은 없어요.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가서 맛있는 거 사 먹으면서 기분전환을 좀 했죠. 제가 먹는 걸 엄청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권기보 코치님이랑 감독님께서 저를 엄청 많이 챙겨주셨어요. 작년엔 코로나 때문에 휴식기도 많고 외박도 못해서 경기를 잘 못 뛰었거든요. 그럴 때마다 셋이서 낚시도 가고, 코치님 집에 가서 밥도 먹고 그랬어요. 그런 것 때문에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정말 은인이시죠.
-강원과 계약 이야기가 나온 건 언제쯤이에요?
작년 8월 추계연맹전을 할 때 감독님께서 저를 따로 부르시더라고요. 강원에서 저를 보러 왔다고. 그때부터 얘기가 잘 풀려서 올해 1월에 계약서를 썼죠.
-계약서를 쓰기 전까지는 무엇을 했나요?
원래 졸업하면 팀에서 나가야 하잖아요. 근데 감독님께서 지금 운동할 곳이 없으니까 그냥 애들이랑 같이 운동하라고 하셔서 졸업한 후에도 같이 운동했어요. 그때 몸을 만들었죠.
-계약서를 쓸 때 너무 좋았을 것 같아요.
좋았죠. 부모님도 되게 좋아하셨고, 저도 ‘드디어 가는구나’ 하고 좋아했죠. 근데 이제 다시 시작이고,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부담이 더 컸어요. U-22 룰에 해당이 안됐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보다) 배로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어요. 그래서 몸을 열심히 만들었어요.
-(호남대) 감독님, 코치님도 좋아하셨을 것 같아요.
되게 좋아하셨죠. 근데 ‘가서 똑바로 해라, 잘해야 한다’ 이런 말씀을 더 많이 하셨어요.
-지금은 강원 B팀에서 경기를 뛰고 있는데요. 아직 프로 데뷔를 못해서 아쉽지는 않나요?
계약 전부터 B팀이 있다는 걸 들었어요.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선수들의 경기 감각을 유지하기 위한 취지로 만들어졌다는 걸요. 저는 B팀에서 경기력도 유지하면서 기회가 되면 위로 올라가서 데뷔를 할 수 있다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경기를 계속 못 뛰면 도태될 수도 있는데 저는 경기를 계속 뛰니까 몸 상태는 좋아요. 아직 프로 데뷔를 못해서 아쉽기는 하지만 저는 자신 있습니다.
-B팀 데뷔전부터 데뷔골을 넣었던데요? 골 영상을 많이 봤겠어요.
1월에 동계 훈련을 갔다가 발목 부상을 당해서 한 달을 쉬고, 복귀해서 일주일 만에 경기를 뛰었어요. 사실 몸도 무거웠고 발목도 아팠는데, 골이 딱 들어가니까 다 나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너무 좋았어요. 근데 부끄러워서 영상을 돌려보거나 그러진 않아요. 영상이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어서 딱 한 번만 보고 더는 안 봐요(웃음).
-원래 포지션이 윙어인데 요즘에는 사이드백도 보시더군요.
네. 여기 와서 처음으로 사이드백을 봤어요. 코치님께서 사이드백도 괜찮을 것 같다고 뛰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아직 위치 잡는 거랑 수비가 좀 어렵긴 하지만 그래도 괜찮은 것 같아요. 많이 배우고 있어요.
-지금까지 경기를 치르면서 아쉬움이 남는 부분은 어떤 것인가요?
공격수를 볼 때 골을 더 많이 넣지 못한 게 아쉬워요. 득점을 더 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요. 현재 사이드백을 보고 있긴 하지만 언제라도 다시 공격수로 갈 수 있고, 다른 포지션도 뛸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더 잘하고 싶어요.
-대학 시절 경기와 K4리그 경기에 다른 점이 있나요?
일단 지금은 돈을 받고 축구를 하잖아요. 그 부분이 학생 선수 때와는 확실히 다른 것 같아요. 돈을 받고 프로 팀 소속으로 경기를 뛰다 보니까 책임감과 부담감이 더 있어요.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일단 K4리그에서 계속 경기를 뛰면서 경기력을 유지하고 제 단점인 피지컬을 보완한 다음, 프로로 데뷔하고 싶어요. 자신 있습니다.
-대학 시절 힘들었던 안경찬 선수처럼 지금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후배 선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대학 후배들한테서 힘들다고 전화가 자주 와요. 늘 ‘힘들다, 힘들다’ 하는데 저보다 힘들지는 않을 거예요(웃음). 저는 힘들 때도 늘 불안한 마음을 안 가지려고 노력했거든요. 불안한 마음을 가지면 행운이 달아난다고 생각해서요. 그래서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했어요. 후배들도 불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가끔씩 불안해질 때면 어떻게 해요?
맛있는 거 먹으러 가야죠. 맛있는 거 먹고, 그냥 하루 푹 쉬고, 내일부터 다시 하면 됩니다. 절대 포기하지 마시고, 자신을 믿고, 열심히 하는 거예요.
[보도자료출처: 대한축구협회]